Eid Mubarak عيد مبارك

지난달 중순에 SNS에 많은 유명 인사들이 “Eid Mubarak (이드 무바라크‎)” 이라는 문구를 올린 걸 기억하시나요? 이 문구는 제가 인도네시아와 아랍에미리트에 살 때 특정한 날에 제 무슬림 친구들에게도 자주 전한 말이기도 한데요. 한국어 직역으로는 ‘축제’를 뜻하는 Eid와 ‘축복 넘치는’을 뜻하는 Mubarak을 합쳐서 ‘축복받는 축제가 되기를’라는 그럴싸한 표현이 됩니다.

그러면 여기서 말하는 이슬람의 축제란 무엇일까요?

이슬람에서는 광범위하게 두 축제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Eid Al Fitr (이드 알피키르) 로 ‘금식을 끝내는 축제’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금식 기간은 저희가 흔히 아는 라마단입니다. 라마단 기간 동안은 전 세계 무슬림 사람들은 한 달 동안 금식과 금욕을 실천함으로 인내와 자제력을 기르고 신앙을 굳게 다집니다. 이 한 달 동안의 고된 수양이 끝난 직후 이드 알파티르가 시작됩니다. 축제 기간에는 가족과 지인들이 함께 모여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라마단 기간을 무사히 마친 것을 감사하고 이와 더불어 가난하고 힘든 사람들에게 음식과 헌금을 통해 자선을 베푸는 등 사랑을 실천합니다. 이 축제를 통해 많은 무슬림들은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누리고 있는 모든 거에 대해 감사함을 느끼고 베풂의 미덕을 배우게 되기에 이슬람의 가장 대표적인 축제이기도 하죠. 저 또한 아랍에미리트에 살 적에 느꼈던 이 축제의 규모를 아직까지도 잊지 못합니다. 특히 모스크를 중심으로 수백 평 넘게 나열된 현수막에서 수백 명의 인파가 무료로 제공되는 비리 아니(인도식 볶음밥)를 먹으며 다 같이 라마단의 끝을 기념하는 장면은 아직도 생생합니다.

두 축제 모두 우리 모두 번째 축제는 Eid Al Adha (이드 알아드하) 로 ‘희생 축제’를 의미합니다. 이 축제의 유래가 되는 이야기는 성경에 나오는 아브라함과 이삭의 이야기를 똑 닮았지만 이삭이 아닌 이스마엘이 제물로 바쳐지는 이야기입니다. 성경과 달리 코란에서는 알라가 아브라함에게 이스마엘을 순종의 의미로 바치라고 명령합니다. 아브라함이 이스마엘을 제물로 바치려는 찰나 알라께서는 아브라함과 이스마엘의 믿음을 보시고 이스마엘을 대신해 숫양을 희생시킵니다. 이드 알아 더하는 이 사건을 기념하기 위한 축제로서 이 기간 동안 무슬림들은 소, 양, 염소 등을 몇 가지 규례를 따라서 도축시킨 후 이 고기를 균등하게 가족, 이웃, 가난한 자들에게 1/3씩 분배합니다. 이에 더해 축제 기간에 무슬림들은 가장 좋은 옷을 차려입은 후에 모스크에서 알라에게 감사 기도를 올려드리고 가족과 이웃과 함께 음식을 즐기며 축제를 보냅니다. 정말 인상적이게도 다시 한번 가난한 자들도 이 축제에 참여할 수 있도록 자선을 베풉니다.

익숙한 크리스마스처럼 12월 25일에 고정된 날짜에 행해지는 것이 아닌 이슬람력에 의해 매년 11일씩 당겨집니다. 이번 연도 기준 이드 알피 치르는 5월 2일~3일에 그리고 이드 알아 더하는 7월 20일~23일에 행해졌습니다. 그러므로 7월에 SNS에 올라온 수많은 Eid Mubarak (이드 무바라크‎) 문구는 이드 알아드하를 가리켰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저는 학창 시절을 이슬람 국가에서 보냈고 대다수의 친구가 무슬림이기에 이슬람교는 저에게 굉장히 친숙합니다. 제가 지금까지 봐온 대다수의 무슬림들은 이슬람의 다섯 기둥(신앙고백, 기도, 자선, 단식, 메카 순례)에 대해 매우 진지하였으며 성실하게 이 다섯 의례를 실천하였습니다. 그의 예시로 아무리 방탕한 친구여도 습관적으로 매일 다섯 번 기도를 꼬박꼬박 하였고 라마단을 철저히 지켰습니다. 이를 본 저는 굉장히 복합적인 마음이 들었습니다. 식전 기도조차 종종 까먹고 말씀 읽기를 게을리하는 저는 이들의 성실함을 보고 겸손해지기도 하는 반면에 예수 그리스도가 결여되어 있는 이들의 행위와 믿음에 의심이 섞인 안타까움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묵상하는 가운데 진리를 앎에도 불구하고 삶 가운데서 이중성을 띈 저를 발견하였고 저를 바라보시며 더욱 슬퍼하시고 아쉬워하시는 주님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저희는 좋아하거나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을 때 그 사람과 계속 이야기하고 그 사람에 대해 끝없이 알고 싶어 하기 마련입니다. 동일하게 기도와 말씀을 통해 주님과 실질적인 소통을 하지 않고 표면적인 사랑을 한다면 이는 진정한 사랑이라 하기엔 어렵습니다. 저 또한 신앙적 훈련이 부족한 사람으로서 기도와 말씀 읽기에 어려움을 느낍니다. 기도하기 위해 눈을 감으면 쓸데없는 생각이 들기 마련이고 말씀을 읽기 위해 성경 책을 펴면 졸리기도 합니다. 저는 연약하고 반응적인 존재이기에 자발적으로 먼저 주님을 사랑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압니다. 그러므로 지금 이 순간에도 부어주시고 계시는 주님의 사랑을 온 피부로 느낄 수 있도록 영적 민감함을 구하길 원합니다. 그로 인해 제 삶 전체가 예배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주님 항상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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